우리들의 이야기

목민심서(牧民心書)와 호지명(胡志明)

bmj 2016. 12. 13. 23:50





목민심서(牧民心書)와 호지명(胡志明)

 

목민심서(牧民心書)와 호지명(胡志明)

 

 

 

임금(정조)은 백성을 수탈하는 관리의 부정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하던중,

 민란이 가장 빈번했던 곡산부사로 정약용을 보낸다.

 

 그는 조세와 부역을 공평히 하고 옥사를 너그럽게 다스려 유능한 목민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처럼 다산 선생은 절세의 경륜을 품었으나 당파싸움의 결과, 소인배들의 질시를 받아

 전남 강진에 유배(流配)된 채로 노년의 18년 세월을 보내시고.

이 유배생활중에 선각자 다산(茶山)선생은 목민심서 48권을 남기신다.

이 처럼 다산은 자신이 품은 목민(牧民)의 꿈을 목민심서에 담았다.

 다산 선생이 이 책 이름을 지을 때의 심정을 책의 머리말에 쓰고 있다.

'양순한 인민에게 위해를 가할 모든 위험요소(감사와 수령은 나라의 大盜요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 선비란 대낮에 도포입고 도적질하는 사람이다.--목민심서中)들을 말끔히

 제거하여 온순하고 양같은 인민들이 마음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백성을 도와주는 일'을

 '목(牧)'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또 자신이 품은 뜻을 현실 속에서 펼칠 길을 찾지 못한 채 유배되어 사는 몸으로 헛되이

세월만 보내기에 마음으로만 쓰는 글이라 하여 심서(心書)란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다.

 

 목민심서는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당하고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며 토로한 목민관이 지켜야 할 금과옥조다.

그런데도 [목민심서]에서 제시한 그의 방안을 수용하기는커녕 읽어주지도 않는

현실을 통탄했다. '알아주는 자는 적고 비방하려는 자는 많으니,

 만약 천명(天命)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 줌의 불쏘시개로 불태워버려도 좋다.

'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월남의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이 다산의 목민심서를 애독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중국, 한국, 일본, 월남 등은 같은 한자문명권(漢字文明圈)이기에 한문(漢文)으로 쓰인

 목민심서가 이들 나라에서 널리 읽혀져 왔다.

 

 특히 월남의 공산주의자요, 민족주의자로서 월남 통일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게 하였던

비전과 의지의 인물 호치민은 평생토록 다산의 목민심서를 애독하였다고 한다.

 

그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급히 도망하게 될 때에는 다른 소지품은 못 가져가도

 목민심서만큼은 꼭 들고 도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베트남 호지명 박물관에는 생전에 '호 아저씨' 가 즐겨 읽곤 했던 목민심서가

전시되어 있다

백성 돌보기를 어버이가 자식 돌보듯이 하라는 다산의 목민정신(牧民精神)이

지금 이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과연 호지명은 월맹군과 싸운 원수의 나라 한국인의 저서를 왜 그토록 애독하였는가?

 출처:화목한 사람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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