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늙은 신발
bmj
2016. 12. 13. 23:36
아버지의 늙은 신발
아버지의 늙은 신발
버거운 세월에 코 깨지고 옆구리터진,
곰삭은 수염까지 돋아나 너덜너덜한,
밤새 허리 끓기고 어깨 결리고 옆구리
쑤셔도 아프다 말도 못하는..
문득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어디선가 오르막길 기어오르는 과적
차량의 소리가 들려 오는 듯,
그렁그렁한 메마른 기침 소리 내며..
누가 아버지 술잔의 절반은 눈물이고
절반은 한숨이라 했는가?
아버지의 신발은 늘 그렇듯 닫힌지퍼
처럼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홍건한 외로움,
고단한 여정,아릿한 애환이 목마르게
출렁이며 또아리 틀고 있었다.
불혹을 넘기면서 부록이 되어 버린 아버지,
가족 속에 있으면서 가족이 그리운 아버지,
땅 위에 살면서 섬으로 살아온 아버지,
헌신만 하다 헌 신이 되어 버린 아버지..
한동안 애써 눈감아 버렸던 이름
이제야 가슴으로 영혼으로 불러보는 이름..
비낀 날 노을빛 맞으며 길게 드리워진
아버지의 그림자를 보면 울컥 소주 한잔이
목을대를 흔들고 지나간다.
그믐달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훤한 이마를 보면 당신의 아프고 시린 삶이
밤송이 처럼 쏟아져 내린다.
아버지를 빼닮은, 닳고 해진 신발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안개에 보쌈당한 아침의
초목들처럼, 아버지가 마시다만 술방울이
방울방울 자꾸만 창에서 흘러내린다.
<아버지의 빈 지게 중에서 편집>
출처:화목한 사람들 카페